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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 꿀잼 여행지. 사방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헬브룬 트릭 분수

travelmong 2025. 2. 14. 22:43

17세기 잘츠부르크에는 남다른 유머 감각을 지닌 대주교가 있었다. 헬브룬 궁전(Schloss Hellbrunn)은 마르쿠스 시티쿠스 폰 호헤넴스(Markus Sittikus von Hohenems) 대주교가 지은 매너리즘 쾌락 궁전이다. 그는 이곳을 찾은 손님들에게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고안해 냈는데, 그 결과가 바로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로 손님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당황하게 만드는 트릭 분수(Wasserspiele Hellbrunn)다. 

 

무더운 여름에 잘츠부르크를 여행한다면 꼭 한번 가볼 만한 곳으로 추천하는 잘츠부르크 명소다. 잘츠부르크 카드(Salzburg Card)가 있다면 입장료도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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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 분수(Hellbrunn Trick Fountain)는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는 오픈 정원이 아니다. 제한된 인원의 그룹으로 나뉘어 지정된 시간에만 입장할 수 있다. 순서는 선착순으로 정해지는데, 티켓 오피스에서 입장권을 구입할 때 티켓에 입장 시간이 지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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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 분수로 들어가는 별도의 게이트가 궁전 왼편에 위치해 있다. 입장 가능한 시간과 인원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일찌감치 줄을 설 필요는 없다. 내 티켓에 인쇄된 시간보다 5분 정도 전에 오면 충분하다.

 

 

트릭 분수에서도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지원된다. 표지판에 보이는 숫자대로 차례대로 번호를 누르면 되는데, 유선 이어폰이 있으면 손이 자유로워서 훨씬 편하게 들을 수 있다. 이어폰이 없어도 스피커가 있기 때문에 귀에 가까이 대고 들으면 된다. 

 

 

안으로 들어가면 이동 방향은 하나로 정해져 있어서 다른 사람들 가는 대로 천천히 따라가면 된다.

 

 

인공 연못 주변에 다양한 조각들이 장식되어 있다. 규모가 큰 편은 아니라서 웅장한 분위기는 아니고 귀족들이 프라이빗 한 산책을 즐겼던 비밀 정원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다.

 

 

깊어 보이지 않는 연못에는 송어들이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었다.

 

 

제일 먼저 관람하게 되는 곳은 고대 로마 건축을 모티프로 만들어진 극장이다. 아치 모양으로 펼쳐진 벽 구조물의 중앙 상단부에는 마르쿠스 시티 쿠스 폰 호헤넴스의 문장이 장식되어 있고 그 위에는 로마 신화 속의 승리의 여신인 빅토리아가 왕좌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극장 중앙에는 군주의 식탁이 자리하고 있다. 테이블과 의자가 모두 돌로 만들어졌다. 곧 방문자들에게 큰 재미와 놀라움을 선사할 비밀스러운 장치가 되어 있는데, 돌덩이가 뜨끈하게 달궈질 정도로 해가 강렬했던 날에 바닥만 흥건하게 젖어있는 것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사진 속에 파란색 유니폼과 모자를 쓴 사람이 안내원인데, 테이블에 앉아도 괜찮다면서 어서 앉아보라고 사람들을 유혹했다. 결국 돌 탁자에 앉은 것은 모두 초등학생 정도되는 어린 손님들 뿐이었는데, 트릭 분수의 묘미를 제대로 즐겨보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착석해 보기를 권한다.

 

 

잠시 후 벌어진 상황. 의자 가운데 구멍에서 물이 솟구쳐 나오기 시작했다. 엉덩이를 정확하게 가격하는 물줄기에 깜짝 놀란 아이들이 꺅꺅~ 거리며 튀어 올랐다.

 

반면에 혼자 여유롭게 이 모습을 관전하며 행복하게 웃고 있는 아이가 있다. 저 자리는 손님들을 초대한 군주의 자리인데, 이 의자만 뽀송뽀송하다. 주인의 자리에서는 물이 뿜어져 나오지 않는 것이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손님들의 표정을 보며 그 순간을 즐겼을 대주교의 얼굴이 딱 저 아이와 같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탁자 주변의 바닥에서도 물이 뿜어져 나와서 의자에서 일어나도 물줄기를 피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 사진을 한 장 남기고 싶었는데, 극장 전체로 관람객들이 흩어져 있으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별수 없이 다음 관람 지역으로 모두 이동하고 난 후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룹의 맨 마지막에서 이동하면 이렇게 잠깐의 짬을 얻어 깨끗한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룹 입장이라고는 하지만 스톤 극장 이후부터는 사실상 개별적으로 각자의 템포에 맞추어 둘러본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촬영하면서 흩어져서 관람하다 보면 어느새 이전 그룹과 다음 그룹의 경계가 사라지고 모두 함께 관람하는 상황이 된다. 

 

 

오르페우스 동굴(Orpheus Grotto).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오르페우스 주변에는 야생 동물들이 자리하고 있고 그의 발치에는 잠을 자는 듯한 여인이 누워있다.

 

처음에는 죽음으로 인해 이별하게 된 에우리디케라고 생각했는데 에우리디케를 저승에서 데려올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면서 오르페우스는 '사랑'을 포기했기에, 이 여인은 절대로 에우리디케가 될 수 없는 잠자는 여인이라고 한다. 그 어떤 아름다운 여인도 그의 새로운 사랑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궁전 내부를 관람할 때 조망했던 부분이다. 트릭 분수 곳곳에도 단단한 뿔이 달린 염소 장식이 한가득이다.

 

 

땡볕 아래 있으면 타들어 갈 듯 뜨거운 날이었다. 트릭 분수에는 반려견도 입장할 수 있는데, 댕댕이 한 마리가 더위를 참지 못하고 분수 속으로 발을 첨벙 담가버렸다.

 

 

별 모양으로 장식된 연못과 헬브룬 궁전 전경.

 

 

건물 안팎으로 여러 개의 동굴이 조성되어 있는데, 바닥을 예의주시하면서 입장해야 한다. 자칫 타이밍을 잘못 맞추면 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에 다리가 흠뻑 젖을 수 있다. 바닥이 축축한 곳은 일단 경계의 대상이다.

 

 

포세이돈 동굴(Neptune Grotto). 아무래도 대주교의 장난기가 보통이 아니었던 듯하다. 삼지창을 들고 있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발아래에 익살스러운 얼굴 장식이 있는데, 글쎄 양쪽 콧구멍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더욱 재미난 장면을 볼 수 있다. 

 

 

갑자기 눈을 뒤집어 까더니 혀를 날름거리면서 구경꾼들을 놀리기 시작했다. 17세기에 이곳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한 지역을 관리하고 통치하는 사람들이었을 텐데,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자못 흥미롭다.

 

 

두 마리의 거북이가 서로의 입으로 물을 뿜어내고 있다. 누가 누구한테 물총을 쏘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정확히 입을 조준하고 있다. 

 

 

재미난 장면들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아마도 어머니일 여인이 숫돌을 돌리고 있고 아이는 바닥에 엎드려서 입으로 물을 뿜고 있다.

 

 

가장 즐겁게 관람했던 동굴 중에 하나인 마이다스 동굴(Mydas Grotto). 고깔 모양의 금속 왕관이 잠시 후에 공중 부양을 시작한다.

 

 

천장에 닿을 정도로 수직 상승하는 금속 왕관. 수압의 강도에 따라서 위아래로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관람객들의 시선을 잡아 끈다.

 

 

18세기에 추가된 기계 극장. 트릭 분수의 물 장치들 중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극장은 18세기의 궁정 생활을 마리오네트 인형으로 표현한 것인데, 물로 구동되는 142개의 이동식 조각과 21개의 장식 조각이 푸줏간 주인, 이발사, 건축 노동자 등 당시의 직업과 생활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상류층을 상징하는 인형들은 천천히 움직이고 노동자 계급을 상징하는 인형들을 보다 빨리 움직이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엿볼 수 있다.

 

기계 극장 앞쪽에 객석 같은 공간이 있는데, 이곳에서도 방심은 금물이다. 인형극에 집중하는 순간 또다시 곳곳에서 분수가 뿜어져 나오면서 사람들을 놀래킨다. 어디서 물 공격을 당할지 몰라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스릴 넘치는 정원이다. 

 

 

관람을 마친 후에는 출구에 설치된 부스에 오디오 가이드를 반납하면 된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무더운 여름날에 시원하고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잘츠부르크 여행 중에 가볼 만한 곳을 찾는다면, 헬브룬 궁전의 트릭 분수를 추천한다.

 

 

 

글, 사진 by 트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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