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스 무하 슬라브 서사시 진품을 만날 수 있는 모라브스키 크룸로프 여행

Moravský Krumlov
체코 예술 여행

인구 5천 명 남짓 되는 남부 모라비아의 작은 도시 모라브스키 크룸로프(Moravský Krumlov). 아마도 크룸로프(Krumlov)라고 하면 프라하 다음으로 많은 여행자들의 방문이 이어지는 체스키 크룸로프(Český Krumlov)를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체코에는 두 개의 크룸로프가 존재한다.
체코 서남부에 위치한 남부 보헤미아의 크룸로프가 여행자들에게 많이 알려진 대표적인 명소, 체스키 크룸로프이고 체코 동남부, 남부 모라비아에 모라브스키 크룸로프라고 하는 또 하나의 크룸로프가 있다. 여행자가 이 도시를 방문하는 이유는 십중팔구 체코를 대표하는 예술가, 알폰스 무하(Alfons Mucha)를 만나기 위함일 것이다.

아르누보 양식의 거장으로 유명한 알폰스 무하(Alfons Mucha)는 남부 모라비아 출신의 예술가다. 그는 1860년 7월 24일, 남부 모라비아의 작은 도시 이반치체(Ivančice)에서 태어났다. 모라브스키 크룸로프에서 이반치체까지는 차로 단 15분 거리로 이 지역 자체가 그의 고향이자 어린 시절 삶의 터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당시 예술의 메카라고 여겨졌던 프랑스 파리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미국 뉴욕에서 커리어를 이어나가던 무하는 돌연 모든 상업 활동을 중단하고 조국 보헤미아로 돌아왔다. 20대 청년 시절부터 애국 활동에 참여하며 조국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무하는 일생 동안 조국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재능을 기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보헤미아로 귀국한 연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슬라브 서사시(Slovanská epopej)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슬라브 서사시(Slav Epic)는 슬라브 민족의 방대한 역사를 담은 총 20점으로 구성된 대형 회화 작품이다.
이 대형 프로젝트를 재정적으로 지원해 줄 후원자인 찰스 크레인과의 만남으로 귀국을 결정한 무하는 프라하 근교에 위치한 즈비로흐 성에 공간을 임대하고 1910년부터 1928년까지, 장장 18년을 슬라브 서사시 작업에 몰두했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은 모두 체코슬로바키아 국민에게 헌정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소실될 위험에 처했으나 남부 모라비아에 위치한 성에 보관되어 다행히 위기를 넘겼고 이후에는 모라브스키 크룸로프로 옮겨져 지역 시민들의 노력으로 복원되었다. 그리고 현재까지 모라브스키 크룸로프 성에서 상설전시되고 있다.
프라하에서도 슬라브 서사시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있었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현재 프라하 국립 현대 미술관이 위치하고 있는 프라하 무역 박람회 궁전(Veletržní palác)에서 5년 동안 전시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프라하 전시 기간에 몇 차례 방문을 했었는데, 너무나 방대한 역사를 담은 작품인 나머지 각 작품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속속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이날 우리는 마침 남부 모라비아 여행을 떠난 참이었다. 와인으로 유명한 팔라바 지역을 돌면서 컴퓨터 배경화면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모라비아 토스카나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하고 또 셀 수 없이 많은 와이너리를 방문하며 행복한 시간을 즐기고 프라하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마침 이반치체와 모라브스키 크룸로프가 지척에 위치해 있는 상황이었고 또 마침 정작 체코 사람인 남편이 지금껏 슬라브 서사시 진품을 만나본 적이 없었던 터라 우리는 예정에 없던 일정을 추가해 보기로 했다. 일요일이라 마을 광장에 주차도 무료로 하고 고즈넉한 마을 골목을 산책하며 모라브스키 크룸로프 성으로 걸음을 옮겼다.

주차한 곳에서 성까지는 도보로 10분 정도 소요됐다.

정문에 무하의 이름과 슬라브 서사시가 간판으로 장식되어 있다.


성 안뜰에 위치한 인포메이션에서 입장권을 구입할 수 있다. 카드, 현금 모두 가능하다.

작품이 프린팅되어 있는 입장 티켓.


마을 풍경이 담긴 기념품과 무하의 아르누보 디자인으로 장식된 기념품도 판매하고 있다.


꿀이 유명한 지역인지 기념품으로 꿀도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는 체코어와 영어로 된 슬라브 서사시 해설 가이드북 한 권씩을 구입했다. 물론 이 책자는 집으로 돌아와서야 제대로 읽어볼 수 있었다.

전시회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다른 곳에 위치해 있다. 'ENTRY'라고 영어로도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다.

무료 짐 보관소도 넉넉하게 구비되어 있다.

전시관은 건물 2층에 위치해 있었는데, 중간중간 방향을 알려주는 안내가 잘 되어 있다.

성 안뜰에 사람이 너무 없어서 우리끼리 전세 낸 것처럼 관람할 줄 알았는데,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전시관은 이미 관람객들로 가득했다.

체코어로 진행되는 가이드 투어를 듣는 사람들도 보였다. 아쉽지만 사람이 진행하는 가이드 투어도 오디오 가이드도 체코어 옵션만 있었다. 그래서 외국인 여행자는 꼭 영어 브로셔를 구입해서 관람하는 것이 좋다.




평균 6m * 8m 규모를 자랑하는 작품들이라 대형 캔버스가 벽면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다. 알폰스 무하의 작품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기존의 상업 디자인들과는 결이 너무나도 다른 작품이다. 역사적인 사실을 넘어 고대와 중세의 종교적인 신화와 민족의 전설까지 포괄하고 있어 신비스러운 분위기까지 느껴진다.


슬라브 서사시 감상을 마치고 기념품 숍에도 들렀다. 무하의 아르누보 디자인들이 장식된 찻주전자와 머그컵 등이 많았고 엽서, 수첩, 책갈피, 스카프, 에코백 등도 있었다.

무하 디자인이 담긴 스파클링 와인도 있었다. 이런 무하 섹트(Mucha Sekt)는 마트에서도 쉽게 만나볼 수 있으니 패스. 나는 에코백, 남편은 마그네틱 하나를 골랐다. 갑작스럽게 추가된 일정이었지만 아주 의미 있고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프라하에서는 차로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이고 대중교통으로는 여러 번 기차를 갈아타야 하는 곳에 위치해 있어서 더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슬라브 서사시를 만나보지 못한다는 것이 참 아쉽다. 하지만 곧 프라하에 영구적인 전시 장소를 찾게 될 예정이라고 하니, 몇 년 안에는 프라하 여행 중에 슬라브 서사시 전작을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자동차로 남부 모라비아 여행을 한다면, 와인 여행지로 가는 여정에 모라브스키 크룸로프 성(Zámek Moravský Krumlov)에 잠시 들러 알폰스 무하의 슬라브 서사시를 만나보 추천한다.
글, 사진 by 트몽
Copyright 2025. 트몽 Allrights reserved